고수동굴

설명

고수동굴은 1976년 9월 1일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256호로 지정 받은 국내에서 가장 화려하고 가치 있는 문화재 동굴로서 남한강 상류 충주호반의 단양읍 금곡천 냇가에 위치한다. 고생대 조선계에 속하는 대석회암통(大石灰岩統)의 중기인 두무동(斗務洞)석회암층 중에 배태되고 있으며 1976년에 한국동굴학회 주관으로 일본동굴학회와 합동조사가 실시된 후 석회동굴로서의 학술적, 관광적 가치가 크다는 것이 확인되어 1976년 학교법인 유신학원(유신고, 창현고)에 의하여 석회암 동굴의 자연관찰 현장학습장으로 개발되었다. 

이 고수리동굴을 배태하고 있는 등우봉 줄기인 고수봉 지표면의 둘리네(doline)에서 투수(透水)된 지표수가 상층부를 확장시키면서 동굴 내에 갖가지 2차생성물의 지형지물을 이루게 하였다고 본다. 이 동굴에는 종유석, 석순, 돌기둥, 유석(流石) 등을 비롯하여 곡석(曲石), 석화(石花), 동굴산호, 동굴진주, 동굴선반, 천연교(天然橋), 천장용식구(天障溶蝕溝) 및 세계적으로 희귀한 아라고나이트[霰石]등 석회동굴 속에서 자라는 2차 생성물들의 모식적인 표본은 모두 찾아볼 수 있다고 할 만큼 포화수대(飽和水帶)와 순환수대(循環水帶) 속의 동굴퇴적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종합전시장이다.

 

주굴 길이 600m, 지굴 길이 700m, 총 연장 1,700m, 수직 높이 50m인 이 동굴은 크게 3층 구조를 이루고 있다. 1층은 용수골에서 동굴의 입구에까지 이르는 통로로 순환수대(循環水帶)의 수식(水蝕) 흔적과 많은 침식지형을 볼 수 있는 곳이고, 2층은 배학당(培學堂)과 신동(新洞)으로 부르고 있는 곳이며, 3층은 상만물상(上萬物相)으로 부르고 있는 공동(空洞)이다. 2층과 3층은 공동지역(空洞地域)으로 종유석과 종유폭포 그리고 유석경관(流石景觀)이 화려하게 발달하고 있는 곳이다.

 

상층부의 대광장에는 길이 10m에 달하는 대종유석이 비단폭처럼 줄을 지어 내리 뻗고, 동굴 안쪽에는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것처럼 정교한 많은 기암괴석들이 늘어서 있어서 웅장한 지하궁전을 방불케 한다. 건국대학교 조사대에 의해 발견된 신동은 주굴보다 7m 높은 곳에 열린, 입구에서 180m의 길이를 가지는 동굴로, 그 안에 높이 13m의 유석인 종유벽을 비롯하여 수많은 석순, 아름다운 석회단구 및 거대한 종유폭포 등이 발달되어 또 하나의 이색적인 지하전당을 이룬다.

 

동굴의 수호신이라고 할 수 있는 사자바위는 하층굴 한가운데서 지켜보고 있으며 이 부근 일대에는 침식지형인 닛찌(nitz)와 놋찌(notch), 그리고 깊게 새겨진 침식선반과 천연교지형(天然橋地形) 그 밖에도 선녀탕으로 알려있는 석회화단구(石灰華段丘)와 림풀(rim pool), 천정용식구(天井溶蝕溝)와 캐비티(cavity), 포켓(pokect), 수평천정(flat ceiling) 등의 용식미형태(溶蝕微形態)의 경관을 보게 된다. 그리고 상층부에는 방패석(shield)이 동굴 천정 면에 매달려 있음을 보게 되는데 이른바 만물상지역으로 불리는 이곳에서는 커튼 형 종유석과 유석경관이 참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 밖에도 나중에 발견되어 새로 개발 공개되고 있는 신동(新洞)지구에는 종유석과 석순의 무리가 밀림의 숲을 이루고 있다.

 

동굴 안을 흐르는 동굴류(洞窟流)는 생물서식에 유리한 조건이 되어, 동굴 속에서는 화석곤충으로 널리 알려진 고수귀뚜라미부치, 고수갈르와벌레 등을 비롯하여 옆새우, 톡톡이, 노래기, 진드기, 딱정벌레 등의 동굴곤충 및 박쥐 등 풍부한 동굴 생물상을 볼 수 있다.

 

또한, 1973년 종합학술조사 때 동굴 속과 입구 부근에서 뗀 석기가 발견되어 선사시대에 주거지로 이용되어 왔음이 밝혀졌다. 현재 공개하여 관광동굴 코스로 이용하고 있는 구간은 600m로 안쪽 용수 골에 이르는 지역은 동굴 생태의 환경보전을 위한 출입통제구역을 설정하고 있으며, 고수동굴의 경관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굴인 미국 버지니아 주(州)의 루레이동굴과 맞먹는다.

 

 

-출처: <문화재청>, <네이버 백과사전 고수동굴>

충청북도 단양군은 백두대간 민족의 여옹 소백산을 지붕으로 단양팔경과 수억년의 신비를 간직한 천연동굴, 그리고 환상의 뱃길, 단양호반이 어우러진 천혜의 명승지와 더불어 유서깊은 문화유적과 독특한 전통문화 행사가 4계절 열리고 있는 문화와 관광의 고을로 제천, 충주와 함께 주요 교통의 결절점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고수동굴은 단양읍 고수리 동경 128˚ 23´ 06˝, 북위 36˚ 59´ 08˝ 지점에 위치한다. 동굴앞으로는 남한강 상류의 지류인 금곡천이 흐르는 등우봉(해발 430m)의 남사면 해발 160m 지점에 동굴 입구가 있으며 출구는 설미기골 상류 해발 210m 지점에 있다. 교통상으로 중앙선 철도의 신단양역에서 북동쪽으로 약 2Km 남한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간 지점에 있으며, 중앙고속도로 북단양, 단양 톨게이트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고수동굴은 조선누층군에 속하는 석회암 중에 형성되어 있으며 부근에는 평안누층군에 속하는 쇄설성 퇴적암이 분포되어 있다. 지질계통은 고생대 오도비스기에 퇴적된 막동석회암이 남북 방향으로 대상 분포를 보이고 있다. 평안누층군에 속하는 만항층은 고수리 동쪽 약 2Km인 금곡리에서 고성석회암을 부정합으로 덮으며 북동-남서 방향으로 분포하고 있다.

고수동굴과 가장 관계가 깊은 지질구조는 고수리 단층으로 동굴부락이 있는 안고수 마을에서 설미기골과 평행하게 발달된 단층으로 N10˚E의 주향을 가지고 서쪽으로 50˚내외의 경사를 가진 역단층이다. 

고수동굴 서북쪽의 도담과 매포지역에서는 돌리네, 우발레 등과 같은 카르스트 지형의 모식적인 표본 지형을 곳곳에서 볼 수 있으나 고수동굴은 태백산맥 지역에 형성되어 있는 일명 산악카르스트(Alphine Karst) 이다. 이 지역은 소백산맥의 북사면 기슭에 해당하는 내륙 산간분지 지형이다. 태백산맥의 서사면 기슭은 좁은 협곡을 이루면서 개석하고 있는 남한강의 물줄기가 크게 굽이치며 곡류하는 단양지역의 유역경관은 한쪽에는 하천의 침식작용에 의한 하식애가 높고 길게 계속되고 있으며, 맞은편 퇴적면 연안에는 느린 완사면과 충적저지를 발달시키고 있다. 인접한 남한강의 반대편 완사면 단구지형에 단양 신시가지가 형성되어 있고, 주변의 하천은 전형적인 감입곡류천(Incised meander)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

 

고수동굴을 끼고 이어지는 계곡은 금곡천으로 서북서 방향으로 남한강에 유입되며, 이는 동남동 방향인 천동리와 수촌리에서 발원되는 소하천이다. 1976년의 학술조사에서 홍시환은 “고수동굴로부터 약 4Km 떨어진 천동리와 수촌리 사이에 지반 융기에 의하여 형성된 4~5단에 이르는 하성에 의한 단구 지형 형성이 동굴 지형의 형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설명하였다.

고수동굴 주변의 토양은 석회암 풍화토로서 적갈색을 띄며 강수량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피복카르스트(Overburden karst)의 특징을 가진다. 고수동굴 주변의 산록에는 석회암의 노출이 첨정암형의 카렌(Karren)이 소수 분포한다. 

이 곳의 지명은 임진왜란(1592년) 당시 한양을 떠나 피난길에 오른 밀양 박씨 형제 중 아우는 청주에 형은 이 곳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당시 이 곳에는 키 큰 풀이 많이 우거져 고수라고 부르게 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갈대밭이 많았던 것으로 예상된다.

 

1973. 10. 한국동굴학회의 고수동굴 종합 학술조사와 1975. 11월 한국동굴 보존학회 조사 보고에 의하여 1976.9.21 천연기념물로 지정. (고수리는 본래 단양군 동면 지역으로 숲이 많다 해서 고숲 또는 고수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고수리라 하고 금강면에 편입되었다가 1917년 대강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89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단양읍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고수동굴은 고수동명에서 유래된 것이다.

 

임진왜란 때(1592) 한양에서 피난 온 밀양 박씨 형제가 있었는데, 그 아우는 청주에 정착하였고, 형은 이 곳을 지나다 숲이 우거지고 한강 상류의 풍치가 아름다워 여기를 안식처로 삼은 것이 오늘의 고수마을의 발달을 가져 온 것 이라 전하는데, 키가 큰 숲이 우거지 이 곳에 정착하여 기큰풀 고, 덤불 수풀 수자를 써서 고수리라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키큰풀 '고'자가 옛 고자로 바뀌어 불리면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고수동굴은 이런 연유로 고숲굴, 고수굴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려졌으나 현재는 고수동굴로 고정되었다. 박쥐가 많이 살았다고 박쥐굴이라 불 리기도 했다.)

출처 - 고수동굴   

고수동굴 상세정보